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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CODE 작성일2024-07-25본문
16일 서울 서초구 법무법인 D.CODE 사무실에서 만난 조정희 변호사. <백성현 기자 stwhite@>
한국에서 전통적으로 세는 나이로 막 50에 들어선 조정희(49·사법연수원 31기) 변호사와 인터뷰어는 거의 같은 세대다. 내가 그의 이야길 들어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된 계기는 그가 다양한 사회적 의제에 대해 세대론적 직관에 기대어 늘 예리하면서도 합리적인 인식을 보여주었기 때문이다. 특히 얼마 전 김모 교수가 쏘아 올린 오발탄 ‘영피프티’ 담론이 공론장에서 이슈가 되었을 때도 소셜미디어에 인상적인 논평을 올리기도 했다.
조 변호사는 그 글에서 “나이 든다는 것이 원래 짜증 나고 힘들고 괴로운 일이기는 하지만 한편 꽤 멋진 일일 수 있는 이유가 ‘수용’에 있다고 생각”한다면서 그 수용을 거부하는 순간 “나이 듦은 그 자체로 고통이고 괴로움일 수밖에 없고, 피상적인 젊음을 유지해 줄 수 있는 것처럼 보이는 영피프티는 다양한 상품을 팔아먹기 위해 노화의 경계에 있는 사람들에게 최면을 거는 욕망의 프로파간다에 지나지 않는다”고 핵심을 갈파한 것.
그 말에 전적으로 공감하는 전제를 깔고서 마저 물었다. 1970년대생, 현재 50대가 전·후 세대와 달리 설정해야 하는 새로운 윤리학과 시대적 역할은 무엇이 되어야 한다고 보는지를.
“우리 세대를 스킵 된 세대라고 보면서 불평하는 건 별로 멋없는 일 같아요. 끼인 세대가 된 게 다 586 때문은 아니잖아요. 결국 우리 세대만의 정체성을 만드는 것이 중요한 거죠. 정치적으로 586에게 문제가 있었다면 그것을 정확히 비판하면서 자기 지평을 만들었어야 하는 것이고, 우리 세대만의 화두 같은 걸 가지려고 노력했어야 한다고 봐요. 제가 우리 세대의 정체성이라고 느낀 것은 기본적으로 자유주의자들이 많다는 거예요. 한국은 선진국이 되었고 우리 세대가 그에 맞물려 기성세대에 진입했다면 선진국에 맞는 라이프스타일이나 에티튜드를 만들어내는 것도 우리의 역할일 수 있다고 생각해요. 과거의 레거시를 비판적으로 계승하면서 새로운 가치를 구현할 필요가 있는 거죠.”
2녀 1남 권속의 생계를 거의 혼자서 책임졌던, 그래서 1분 1초로 허투루 쓰지 않았던 어머니의 모습을 보면서 성장기의 조 변호사는 집안의 유일한 아들로서 부채감을 느꼈다고 했다. 그래서 열심히 살아야겠다는 생각을 했다는 것이다. 기억은 안 나지만 친구들이 상기시켜 주기를, 중학교 다닐 때 법대에 가고 싶다는 말을 했다고 하는데 그것은 어쩌면 일찍이 안정을 희구해야만 했던 상황에서 나온 ‘자기 암시’였는지도 모른다. 학업 성적이 우수했던 그는 자연스레 법대에 진학하는데, 1-2학년 때는 법대문학회 활동에 주력하면서 회장까지 맡았다고 했다. 그러다가 3학년에 들어서면서 후배들에게 이제부터는 공부를 해야겠다고 양해를 구하곤 사법시험 준비에 들어갔다고. (이런 ‘모드 전환’은 조 변호사 특유의 남다른 유연함과 실행력을 보여주는 유력한 증거다.) 그러곤 만 스물넷의 나이에 당당히 시험에 합격한다.
“당시 IMF가 터졌고 우리 집이 한 번 더 경제적으로 큰 타격을 입었어요. 더 이상 신세를 질 수도 없었고, 폐를 끼치는 일이 있어선 안 된다고 생각했죠. 그래서 더 절실했던 것 같아요. 비교적 늦지 않게 사법시험에 합격한 건 ‘공부머리’가 있어서라기보다는 시험이든 업무든 저는 그것을 항상 효율적으로 해결하는 방법을 찾는 습관이 있거든요. 그런 저만의 습속이 사법시험 공부와 잘 맞았던 것 같아요.”
나는 이 말이 그가 이 세계를 구성하는 모든 질서와 체계를 통합적 구조주의자의 눈으로 살피고 있음을 드러내는 말로 들렸다. 이것은 그가 변호사의 길을 걷게 되었을 때 기업자문, M&A, 금융, 부동산, 디지털 테크놀러지의 전문가가 되는 것과도 밀접한 연관이 있는 것처럼 느껴졌고.
불평하는 건 별로 멋이 없어
586세대에게 문제가 있다면
정확히 비판하며 정체성 만들어야
IT기업 폭발하던 시대 흐름 읽고
디지털 분야에 포커스 맞춰
걸어보지 않은 길 걷는 희열
1987년 제정 역사적 헌법 있는데
왜 그토록 헌법적 가치에 무심한지
진영과 정치적 이해를 떠나 보면
상당한 무게감 가지는 준거 될 것
연수원을 마친 후 공익법무관으로 나간 그는 2년 차에 대검 기획과 법무관으로 콜업돼 검찰을 경험한다. 이후 검찰로부터 지망 권유를 받기도 하지만 당시 ‘에버그린’이라는 로펌 대표와의 ‘치명적’ 인연으로 변호사의 길을 걷기로 결심한다. (물론 여기에 현실적인 고려도 있었으리라.) 그러곤 미국 유학길에 올라 컬럼비아대 로스쿨에서 LL.M. 마치고 미변호사 자격증을 획득한 후 귀국하는데, 그사이 소속 회사가 대형로펌 세종과 합병되어 세종의 파트너로서 경력을 시작한 것.
2021년 6월, 세종에서 과감히 독립해 법무법인 D.CODE를 설립해 자신의 전문성을 특화한 조 변호사에게 D.CODE의 지향점과 차별화 전략을 설명해 달라고 했다.
“사실 저희는 종합 로펌으로 민형사 비중도 높고 다양한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는데요. D.CODE는 제가 세종에서 디지털 테크팀장을 하다가 나와서 만든 거예요. 2000년대 중후반부터 우리나라의 IT기업들이 많이 성장을 하고 스타트업들도 생기더니 2010년대 중반부터 새로운 스타트업들이 폭발적으로 성장하고 그랬거든요. 제가 자문을 하면서 보니까 이런 회사들의 비즈니스 모델 자체가 IT로 특화돼 있고 그에 따라 데이터와 개인 정보가 매우 중요해지고 거기에 블록체인 회사들까지 등장하니까 전에 없던 새로운 이슈들이 많이 생길 수밖에 없는 구조가 된 거예요. 그래서 D.CODE를 만들면서 그런 영역에 포커스를 맞춰보자는 생각을 하게 된 거죠. 저희만의 전략은 고객들한테 효율적인 서비스를 하자는 거예요. 대형로펌과 비교해 업무는 비슷한데 저희는 작은 회사이기 때문에 좀 더 효율을 기할 수 있는 부분이 있어요. 대형로펌은 전문 팀들이 나뉘어져 있어서 이슈에 접근할 때 다른 팀들과 협의를 하니까 의사결정이 오래 걸릴 수도 있고, 그러다 보면 리걸 피(fee)가 올라갈 수 있거든요. 그리고 저희도 이해상충 이슈가 없는 건 아니지만 대형로펌에서는 그런 게 상존하는 이슈여서 의뢰가 와도 못 하는 일들이 상당히 많아요. 그런 부분에서 저흰 좀 더 효율적으로 속도감을 낼 수 있는 장점이 있죠.” 변호사 시장이 과열되어 가는 상황에서 대형로펌의 울타리를 나와 회사를 만들 때 왜 불안감이 없었겠는가. 조 변호사에게 확인차 물으니 그도 불안의 실체를 인정하면서도 걸어보지 않은 길을 걸을 때 느끼는 희열을 좇아가는 쪽을 택했다고 했다. 그는 늘 그렇게 살아왔다는 것이다. 공적 영역과 사적인 영역에서 공히 수많은 결정과 선택의 순간에 조 변호사가 금과옥조로 삼은 기준은 ‘그 일을 내가 즐겁게 할 수 있느냐’의 여부였다고. 단순한 그 대답이 나에겐 더없이 진솔하고 가깝게 다가왔다.
최근 기업 관련 가장 큰 이슈라고 할 수 있는, 공정거래위원회가 쿠팡에 1400억이라는 천문학적인 과징금을 매긴 것에 대해 전문가인 그의 견해를 묻지 않을 수 없었다.
“쿠팡 과징금 이슈는 계속 진행 중인 사건인데 제가 많은 이커머스 업체들을 자문했지만 사실 이커머스 업체들을 옹호하고자 하는 게 아닌데 이커머스 회사들의 비즈니스 모델 중에 하나가 사실은 자사 PB상품이나 수익성이 높은 상품들을 검색 결과 상단에 올리는 거거든요. 그걸 얼마나 세련되게 하느냐가 관건인데 쿠팡의 경우, 공정위에서 혐의를 잡은 부분들이 분명히 있었던 것 같긴 해요. 그런데 업계의 공공연한 관행이라고 할 때 잘못한 부분이 있다고 해도 이게 사상 최고 과징금을 때릴 만한 일인가에 대해선 섬세한 판단이 필요한 거고, 저는 그걸 법률신문 칼럼에서 ‘정무적 판단’이라고 표현한 거예요. 현재 우리나라 이커머스 업체들 상황이 상당히 안 좋거든요. 저희 아들만 해도 고등학생인데 중국 이커머스에서 질이 안 좋은 물건을 싸다는 이유로 많이 사더라구요. 고등학생들 사이에선 여기서 물건 안 사면 바보라는 이야기도 있대요. EU 같은 경우, 미국 빅테크 업체에 대해 심한 과징금을 때리는 사례가 있는데, 그건 미국 업체에 대한 뿌리 깊은 견제 의식 같은 게 작용한 것이어서 일부러 좀 많이 때리는 것이고, 우리나라 같은 경우에는 업계 생태계를 좀 깊게 들여다보는 과정도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조 변호사의 말은 그대로 자판으로 옮기면 바로 문장이 될 정도로 논리적이고, 거기에 동원하는 사례나 비유도 자신의 주의주장과 한치의 모순도 없이 적확하다. 변호사라는 그의 직업을 감안한다고 해도 언술의 설득력과 매혹이 상당한 것. 나는 거기서 ‘웰메이드’라는 단어가 떠올랐다. 그는 확실히 변호사이기 이전 한 인간으로서 잘 만들어진, 충분히 연마된, 성숙한 존재 같은 느낌을 안겨준 것.
이번엔 제너럴리스트로서의 조 변호사의 깊이를 시험하는 질문을 던져보았다. 사실 법조인들을 만날 때마다 공통적으로 답을 구했던, 내겐 화두와도 같은 질문으로, 근년 한국 사회에서 상호 격렬하게 부딪쳐온 정치적 정의를 외치는 목소리와 법적 정의를 말하는 목소리, 그 난맥상을 풀 수 있는 해법이 뭐라고 생각하는지를.
“제가 미국에서 유학할 때 제일 놀랐던 게 미국인들의 헌법에 대한 절대적 경외와 존중이었어요. 그들은 중고등학교 때부터 교과 과정에서 헌법을 배우거든요. 예컨대 지금도 미국 사회는 총기 소유 이슈를 두고 다투는데, 총기 소유에 관한 권리가 헌법에 있기 때문이에요. 이처럼 사회 정의와 관련된 이슈의 구체적 근거와 역사적 배경이 헌법에 다 있는 거죠. 미국인들이 헌법을 존중하는 걸 보면서 저는 왜 우리는 87년에 제정한, 역사적 권위가 있는 헌법을 가지고 있으면서 왜 그토록 헌법적 가치에 무심하고, 정치적 이해에 따라 얼마든지 뜯어고칠 수 있다고 보는지 굉장히 큰 불만이 있어요. 제가 솔직히 법률가라서 그런 것이겠지만 지금 한국 사회가 공통적으로 지향해야 하는 가치에 대해 새로운 합의가 필요하다고 생각하지는 않아요. 이미 있는 헌법과 그 가치에 대해 우리가 진영과 정치적 이해를 떠나 존중할 수만 있다면 그것이 상당한 무게감을 가지는 ‘준거’가 될 수 있거든요. 그러니까 정치적 정의와 법적 정의가 부딪쳐온 상황도 사실 헌법적인 관점에서 보면서 성찰을 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내가 지금까지 같은 질문을 던져서 받은 대답 중에 손에 꼽을 정도로 명쾌하면서도 설득력을 갖는 대답이 그로부터 나왔다. 헌법이 말하자면 정의의 대헌장 같은 역할을 충분히 수행할 수 있다는 것인데, 우리 사회의 구성원들이 다들 눈뜬 봉사에 머물러 있다는 지적일 테다. 인터뷰 말미에 이르러 조 변호사에게 지금까지 사는 동안 가장 기뻤던 일과 슬펐던 일을 꼽아달라고 한 것은 그의 심연을 확인하고 싶었기 때문인데, 그는 두 아이가 태어났을 때와 회사를 만들고 직원들과 첫 회식을 했을 때를 기쁜 일로, 그리고 수년 전, 지금은 건강을 회복한 어머니가 뇌출혈로 쓰러져 병원 수술실에 들어가시면서 눈물을 흘리는 장면을 보고는, 열 시간 이상 병원에서 어머니의 수술이 끝나기를 기다리던 그 영겁과도 같은 시간을 가장 슬픈 일로 꼽았다. 아, 그런데 그런 말을 하는 조 변호사의 눈시울이 붉어지더니 이내 구슬 같은 눈물이 흘러내리는 게 아닌가. 강해 보이는, 그리고 실제로 쿨한 그의 내면 깊숙이 내장되어 있는 측은지심이 드러난 순간인데, 나는 그것도 조 변호사의 남다른 매우 매력적인 자본으로 보였다.
조 변호사는 격렬한 ‘성장’과 엄혹한 ‘금기’를 동시에 요구한 1980년대의 이중성에 소년성을 훼손당한 자기 세대의 고독을 알고 있음에 틀림없다. 엄살 부리듯 쉽게 노출해서도 안 되지만 또한 없는 것처럼 위장해서도 안 되는 그 순금 같은 파토스를. 그가 기꺼이 어울리되 휩쓸리지 않는 화이부동(和而不同)의 가장 노련한 실행자처럼 보이는 이유도 그 때문이다.
김도언 시인(소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