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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CODE 작성일2024-07-04본문
시장 빼앗기면 되찾기는 불가능에 가까워
과징금엔 넓은 시야 정무적 판단 필요
며칠 전 공정거래위원회는 이커머스 업체인 쿠팡에 역사상 가장 큰 금액인 1400억 원의 과징금을 부과했다. 쿠팡이 검색순위 알고리즘을 조작하고 상품 리뷰 작성에 임직원을 동원하여 자사브랜드인 PB상품에 대해 높은 별점을 부여하는 등 위계행위를 통해 부당하게 고객을 유인했다는 이유였다.
사실 이커머스 업체가 직접 판매하는 PB상품이나, 보다 수익성이 높은 상품을 검색 결과 상단에 노출하고자 하는 것은 비일비재한 관행이다. 공공 플랫폼이 아닌 사기업의 서비스 검색 결과에 엄중한 중립성을 요구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기도 하다. 다만 이 경우에는 상단에 노출된 PB상품이 일반 상품과 사실상 구별이 되지 않았고, 임직원의 리뷰도 ‘쿠팡체험단’이라고 표시된 일반인들의 리뷰와 구별이 되지 않았기 때문에 이해상충의 문제가 더욱 부각된 것으로 보인다.
이번 조치가 정당한 것이었는지는 앞으로 법원에서 충분히 다투어질 것으로 보이나, 이 사례는 이커머스 기업에 상품 검색 결과에 대한 중립성을 얼마나 요구할 수 있을 것인가, 차등적인 검색 노출은 어떤 기준에서 허용이 될 것인가에 대해 중요한 기준을 제시해 줄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우리는 이미 기존에 이러한 검색 결과의 중립성이 문제된 사례들을 여럿 겪은 바 있다. 지난 2017년 네이버 부동산에서 제휴사의 매물이 아닌 네이버 부동산의 매물이 우선 노출되고 있다고 문제를 삼았던 ‘직방’과 같은 국내 사례는 물론, EU가 구글이 자사의 쇼핑 서비스를 검색에서 상위에 노출시키고 경쟁사들의 서비스를 하위에 배치함으로써 공정한 경쟁을 방해했다는 이유로 3조 원에 가까운 과징금을 부과했던 사건 등이 대표적 사례들이다.
위와 같은 선례들을 볼 때, 쿠팡의 행위가 “위계행위”로 볼 정도의 위법성이 인정된다면 공정위의 조치도 충분히 설득력이 있을 수 있을 것이나, 그렇다 하더라도 과연 이 사안이 역사상 최대의 과징금을 부과할 정도의 사안인지에 대해서는 여전히 의문이 남는다. 국내에서의 공정거래 이슈만을 법리적으로 따져서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이커머스 기업에 천문학적인 과징금을 부과하기에는, 최근 국내 이커머스 시장을 둘러싼 환경이 녹록치 않기 때문이다.
몇 년 전부터 국내 이커머스 시장을 저가상품으로 무차별 공략해 온 알리, 테무, 쉬인 등의 거대 중국 이커머스 기업들과 거대한 자본력으로 국내에 직배송을 시작한 아마존 등으로 인해, 국내의 이커머스 시장은 사실상 쿠팡 이외에는 모두 고사 직전이나 다름이 없다. 국내를 대표하던 이커머스 업체 중 하나인 11번가조차 지속된 경영악화로 희망퇴직을 단행하다가, 최근에는 결국 매각대상이 되어 경쟁자인 중국 이커머스 업체를 잠재매수인으로 상정하고 매각을 시도하고 있을 정도이다.
만약 이번 제재가 지나치게 징벌적이어서 국내 기업들의 경쟁력을 악화시킨다면, 결과적으로 국내의 이커머스 시장이 완전히 외국 업체들에 장악당할 우려가 없지 않다. 위에서 언급한 사례에서 EU가 구글에 천문학적 과징금을 부과한 이면에는, 단순한 공정거래 차원을 넘어 EU의 미국 빅테크업체에 대한 오래된 경계심과 노골적인 견제 의도가 있었음을 주지할 필요가 있다.
어떤 행위가 공정거래법 위반인지 아닌지를 판단하는 것은 엄정한 법률적 판단이 필요하지만, 과징금의 액수와 같은 최종적인 처분의 수준을 정하는 것은 보다 넓은 시각에서의 정무적인 판단도 필요하다. 특히 지금과 같이 미국과 중국의 거대 이커머스 업체들이 엄청난 자본력을 무기로 전 세계의 이커머스 시장을 표적으로 시장 점유율을 확대하고자 하는 상황이라면, 우리나라의 공정거래위원회로서는 단순히 국내시장에서의 위법행위 단속에 그칠 것이 아니라, EU의 경쟁당국처럼 보다 넓은 시각에서 우리나라의 시장을 보호하기 위해 어떠한 조치를 취하여야 하는지를 고민할 필요가 있다. 시장을 한번 빼앗기면, 이를 다시 되찾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깝기 때문이다.
전 세계가 하나의 시장으로 통합되어 거대 이커머스 업체들 사이의 무한 경쟁이 벌어지고 있는 지금, 우리에게는 보다 넓은 시각이 필요하다.
조정희 대표변호사(법무법인 디코드)